YOU HAPPY
죽을 만큼 사랑해서 결혼하고
죽을 것 같아 이혼한다.

안녕하세요,
유해피심리상담센터 부천센터 심은서 상담사입니다 :-)
오늘은 '죽을 만큼 사랑해서 결혼하고
죽을 것 같아 이혼한다.’'에 대해
이야기해 드리려고 합니다.

죽을 만큼 사랑해서 결혼하지만,
결국 죽을 것 같아서 이혼을 선택한다.
시샛말로는 ‘웃픈 이야기’이지만,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결혼식장에서 느끼는, 세상을 다 얻은 듯한 행복과
감격의 유효기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사람들은 불행한 결혼의 해결책으로 이혼을 말하며,
더 나은 상대를 만나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 선택 역시 결코 가볍지 않다.
그래서 많은 부부는 이혼 대신 또 하나의 선택을 한다.
그저 그 관계 속에 머무르며,
못마땅한 감정들을 억누른 채 살아가는 것이다.
친밀한 사랑은 더 이상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라 여기고,
음식, 알코올, 일, 활동, 텔레비전
혹은 로맨틱한 환상 속에서 자신을 달래며
무의미한 결혼생활을 버텨낸다.
그러나… 여전히 불행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상대에 대한 ‘부정성’을 낮추는 것이다.
이미 우리의 뇌는 상대방에 대한 부정적 정보에
과도하게 집중하도록 편향되어 있다.
그 결과 우리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왜곡되고 굴절된 모습으로 인식하게 된다.
극도의 갈등 상황에 놓인 우리의 신경계는
팽팽히 당겨진 활시위와 같다.
작은 눈빛, 사소한 말투,
무심한 걸음걸이조차 공격으로 느껴지고,
그 순간 이미 화살은 발사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래서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하루에 두세 번, 단 몇 초라도 좋다.
상대의 긍정적인 면과 감사한 점을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작은 시도는 긴장된 활시위를
조금 느슨하게 만들고,
그 틈으로 다시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둘째, 상대를 ‘인정’하라.
이혼을 결심하고 가정법원을 찾은
많은 부부들이 공통적으로 말한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습니다.
참아보기도 했고, 이해하려고도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더 이상은 안 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가장
고통을 키우는 방식이기도 하다.
우리는 참으려 할수록, 이해하려 애쓸수록
억울함과 분노를 더 깊이 쌓아 올리게 된다.
이해에 앞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인정’이다.
내가 보는 세계와, 상대가 보는 세계는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당신은 그렇게 느꼈구나.”
“당신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겠다.”
이것이 인정이다.
중요한 것은, 인정이 곧 수용이나
동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상대를 인정하면서도
그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으며,
마찬가지로 나의 의견 역시
상대가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 ‘차이의 인정’이 이루어질 때,
놀랍게도 많은 갈등은 힘을 잃고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한다.

셋째, 그리고 비로소 ‘이해’하라.
인정이 이루어지면, 이해는
더 이상 억지 노력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상대의 마음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해가 생기면 공감은
따로 애쓰지 않아도 따라온다.
우리는 종종 공감을 ‘연기’하려 한다.
“그랬구나…”라는 말이 진심이 아니라
기술이 될 때,그것은 단지 앵무새의 흉내에 불과하다.
그러나 진짜 이해에서 비롯된 공감은 다르다.
“아… 그때 정말 힘들었겠구나.”
이 한마디는 그동안 쌓아온 벽을 조금씩 허물고,
서로의 눈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맞잡는 연결이 다시 시작된다.
우리는 다시 처음처럼 사랑할 수는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전보다 더 깊이 이해하며
더 현실적이고 단단한 방식으로 사랑할 수는 있다.
어쩌면 결혼의 의미는
완벽한 사랑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끝내 포기하지 않고
다시 연결되는 법을 배워가는 여정인지도 모른다.


